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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정든 첫 번째 차를 떠나보내며..

by 가리봉맨 2016.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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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동물을 키우다 원치 않게 떠나보내는 사람의 마음이 이럴까? 햇수로 10년, 만으로 9년을 탄 차를 처분했다. 워낙 정신없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자려고 자리에 눕기 직전인 이 시간에야 조금 실감이 난다. 무심한 주인은 마지막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다. 오전 중에 차를 가져간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저녁에 퇴근하고 오면 차가 없다는 사실과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새 차가 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떠난 차가 더이상 없다는 사실을 덮어버렸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일명 영맨이라고 하는 자동차 대리점 직원이 정신없이 새 차에 대해 설명해 주고 이런저런 자동차 물품을 안겨주고 가버렸다. 그리고 이제야 실감이 난다. 비록 나 혼자지만 이런저런 추억 이야기를 하면서 오늘 밤만이라도 떠난 차를 기억해 주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 싶다. 어쩌면 허전한 내 마음을 글로나마 달래고 싶은 마음이 더 큰지도 모르겠다.


전에 어떤 물건에 대해 이런 감정을 느꼈던 적이 있던가? 없었던 것 같다. 왜일까? 다른 물건에 비해 자동차라는 물건이 고가라서? 그건 아닌 것 같다. 결국 그 공간 안에서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 했고 또 함께 많은 일을 겪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먼저 아버지가 생각난다. 그 구구절절한 사연은 페북과 카카오 브런치에 따로 올렸으므로 생략한다. 다음으로는 잠시 떠났다가 돌아와서는 보조석에 앉아 "아, 역시 이 자리가 제일 편해!"라고 말해줬던 아주 가까웠었던 사람이 생각난다. 떠난 동안 아마 꽤 큰 차를 타다가 내 작은 마티즈로 돌아왔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그 말이 진심이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우리 식구들. 와이프. 두 아이. 와이프는 연애할 때와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당연히 보조석에 앉았다. 경차와 좀 큰 차를 둘 다 몰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앞좌석은 그리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뒤로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신생아는 카시트를 뒤보기(역방향)으로 장착해야한다. 아닌가? 좀 헷갈린다. 아무튼 신생아용 카시트는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 그래서 와이프가 좁디 좁은 뒷자석으로 밀려났다. 아이가 좀 크면서 카시트를 세울 수 있게 돼서 다시 와이프가 보조석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둘째가 태어나면서 다시 뒷좌석으로 쫓겨났다. 둘째가 좀 크면서 다시 보조석으로 컴백. 하지만 둘째는 카시트가 뒤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젖을 못 뗀 관계로 보조석에서 엄마가 앉고 타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그러면 뒤에 있는 첫째는 왜 자기만 뒤에 혼자 있어햐 하냐고 징징거리곤 했다.


아이들이 수족구에 걸리는 바람에 와이프와 아이들은 수요일부터 오늘, 금요일까지 내내 집에 있었다. 나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다. 그 당시엔 의식하지 못했지만 지난 주말에 함덕 해수욕장에 다녀온 것이 마티즈와 함께 한 마지막 여행이었다. 그리고 수요일 새벽에 수영장 강습 등록한다고 제주 종합경기장에 다녀온 것이 마지막 주행이었다. 그 뒤로 아파트 우리 동 바로 앞에는 자리가 없어서 건너편에 주차해 놓은 채로 3일을 혼자 놔둔 것이다. 그리고 오늘 퇴근했을 때 마티즈는 그 자리에 없었다.


처음에는 살짝 긁힌 것도 펜으로 색칠하고 손세차도 자주 하곤 했다. 뒤로 갈수록 관리가 소흘해져서 오른쪽 앞바퀴 윗부문은 녹이 많이 슬어서 살작 건드려도 살이 떨어져나갈 지경에 이르렀다. 미안하다는 말 밖에 다른 할 말이 없다. 신발장 안에는 얼마 전에 사둔, 포장도 뜯지 않은 붓펜이 그대로 있다. 내부 청소는 말할 것도 없다. 마지막까지도 게으른 주인이다. 내 마티즈는 올수리를 해서 다른 사람에게 인도된다고 한다. 부디 부지런한 주인을 만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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