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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살짝 긴 리뷰

[책 리뷰]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 심채경

by 가리봉맨 2021.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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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제목에 끌려서 홀린 듯이 빌려 온 책이다. 이 책은 천문학자 심채경님이 쓴 에세이다. 저자 프로필을 검색해 보니 우리집 근처에 있는 대학을 졸업했고 그곳에서 오래 근무하셨다. 그래서인지 더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책 제목인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의 뜻은 (제대로 이해한 건지 모르겠지만) 천문학자가 천문대에 가서 직접 별을 관측하는 일은 드물고, 인터넷 상에 공개된 자료를 이용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 앞에서 보내며 일한다는 의미다. 마냥 낭만적인 직업일 것이라는 상상과는 좀 거리가 있다.

책의 구성은 [1부. 대학의 비정규직 행성과학자], [2부. 이과형 인간입니다], [3부. 아주 짧은 천문학 수업], [4부. 우리는 모두 태양계 사람들], 이렇게 넷으로 나뉘어있다. 그리고 각 부는 5~6개의 챕터들로 다시 나뉜다. 대부분의 에세이가 그렇듯이 각 챕터가 독립적이라서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아마 블로그 같은 매체에 챕터 단위로 올렸던 글들을 모으고 다듬어서 엮은 책인 듯하다.

천문학자가 쓴 책이고 주로 천문학에 대한 이야기들이지만 다행히 머리를 굴리며 집중해서 읽어야 할 만한 부분은 많지 않다. 재밌는 챕터가 많은데 먼저 "『실록』베리에이션"이라는 챕터에 대해 먼저 말해보려고 한다. 한 문장을 옮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임금이 '이런 것은 적지 말라'고 하면 적지 말라고 했다는 것까지 기록해버린 이 지독한 공무원들은 하늘과 자연의 현상도 기록으로 남겼다. 76년마다 돌아오는 핼리혜성에 대한 기록도 989년 고려 성종 때를 시작으로 조선시대 말인 1835년까지 기록돼 있다고 한다.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놀라움을 넘어 경외감이 든다. 이 챕터에는 김연수 작가의 "청춘의 문장들"의 한 구절이 나오기도 한다. 또, 다른 챕터에서는 김중혁 작가의 에세이 "뭐라도 되겠지" 의 내용이 언급된다. 작가의 독서 취향이 나와 비슷한 것 같아 반가웠다.

2부의 첫 챕터, "최고의 우주인"은 다른 챕터보다 좀 무거운 이야기를 다룬다. 천문학자이며 과학자이기 전에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으로서의 애환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언론에 의해 잘못된 이미지로 각인된 우주인 이소연에 대한 변호로 챕터가 시작된다. 알다시피 그녀는 고산의 탈락으로 예비 우주인에서 갑자기 우주인으로 바뀌었다. 언론은 임무가 끝나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 그녀에게 소위 먹튀 이미지를 씌워놨고 나도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소연은 애초 계약했던 의무기간의 갑절되는 동안 우주인의 소임을 성실히 수행했다고 한다. 이어서 작가는 저녁 회식자리에서 애는 어떻게 하고 왔냐는 동료의 물음, 아이가 아프면 당연히 엄마가 조퇴를 하고 가야 하는 상황 등 여성 직장인으로서의 고충을 이야기한다. 나도 최근 맞벌이 부부가 돼서 그런지 많은 부분이 공감됐다.

4부의 마지막 챕터이자 이 책의 마지막 챕터인 "우리, 태양계 사람들". 천문학에만 한정된 내용인지 모르겠지만 과학 논문에서는 항상 저자를 '우리 we'라고 칭한다고 한다. 공동연구자가 쓴 논문이라면 당연한 부분이지만 단독 저자일 경우에도 이렇게 쓴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연구는 내가 인류의 대리자로서 행하는 것이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쓰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제 막 달 탐사를 시작하려는 우리나라. 저자는 기쁜 마음으로, 지구상의 전 인류에게 '우리' 관측자료를 내어놓을 그날을 기다린다. 라는 말로 글을 끝맺는다. 이 책을 쓰는 동안 10개의 계절이 지나갔다고 한다. 2년 6개월, 공교롭게도 내 군 생활 기간과 똑같다. 다음 책이 나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지만 별 헤는 마음으로 기다려보련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리커버) - 10점
심채경 지음/문학동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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