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빈손 시리즈로 유명한 만화가이자 서퍼인 이우일님의 에세이. 서핑을 다룬 에세이라면 작가, 내용 불문 무조건 읽는 편이다. 최근에는 배우 윤진서님의 에세이, '너에게 여름을 보낸다'를 참 재밌게 봤다. 이우일님이 타는 보드는 보디보드(부기보드)다. 서핑 보드는 크게 롱보드와 숏보드로 나뉘는데 보디보드는 숏보드보다도 짧고 작다.
보디보드는 해수욕장에서 관광객들이 타는 레저용 보드로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전문적인 서핑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좀 놀랐다. 역시 장인은 도구 탓을 하지 않는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림책 작가인 아내, 선현경님이 쓴 프롤로그로 시작한 책은 딸 이은서가 쓴 에필로그로 끝난다. 서핑에 미친(!) 아빠와 달리 딸은 파도타기는커녕 그 어떤 물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작가가 죽도 해변에서 큰 파도에 휘말려 일명 '통돌이'가 됐던 일을 쓴 부분을 읽다 보니 예전 내 경험이 겹쳤다. 맛집과 이쁜 카페가 즐비한 월정리 해변에서 제대로 통돌이를 당했었다. 라인업을 제대로 잡지 못한 상태에서 저 멀리 집채만 한 파도가 오는 것이 보였다. 앞선 서퍼들이 패들아웃을 외쳤지만 나는 몸이 굳은 채 어영부영하다 그대로 파도에 휩쓸렸다. 보드가 파도와 함께 해변으로 총알 같은 속도로 날아가고 리쉬가 순간적으로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이 느껴졌다. 물속에서 수십 바퀴를 구르다 고개를 빼꼼 내밀었는데 다음 파도가 다시 몰려왔다. 해변까지 그대로 밀려오다 결국 짜디짠 바닷물을 조금 먹기까지 했다. 서핑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 경험이었다. '죽음은 언제나 이렇게 가까이에 있구나' 라고 쓴 작가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책의 제목과 같은 이름의 챕터 '파도수집노트'. 작가는 언젠가부터 노트에 그날그날의 파도타기의 과정과 좋았던 점을 적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계속 쓰다 보니 파도수집노트에서 파도타기 이야긴 쏙 빠졌다고. 대신 바다에서 누굴 만났거나 맛있는 걸 먹었다거나 하는 쓸데없는 이야기만 남았다는 것이다. 그는 기억력이 나쁜 사람은 조금이라도 좋았던 일은 모조리 적어둘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인생에서 아름다웠던 일은 오직 기억하고 있는 것들뿐이니까".
파도수집노트 - 이우일 지음/비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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